아카데미 낙제생은 연금술사로 다시 시작한다
- 등록일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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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아셋 코넬리우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다.'
나를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
'용사 학교 에르바스'의 등장인물인 전투 계열 교수 세드릭이 틀림없었다.
넓은 공간의 경기장. 그 한가운데 나는 난데없이 목검 한 자루를 들고 서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갑옷을 두른 허수아비.
내 기억이 맞는다면 지금 이 상황은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진급 시험인 자격 증명 시험이다.
'뭐 하는 거지, 바로 시작해라. 아직 뒤에 순서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많다.'
옆에 서있는 세드릭 교수가 기다리는 학생들이 많다고 제촉한다.
-'저거 봐, 내가 말했지! 저 녀석은 분명 실패할 거라고!'
-'매번 뺀질거리면서 수업이란 수업은 다 빠지고 따로 연습도 안 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그러면서 뭐 검성 명가 코넬리우스가의 사람이라며 천재는 연습이 필요 없다나 뭐라나? 본인 주재 파악이 안 되나 봐.'
좀 더 머뭇거리자 주변에서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셋 코넬리우스를 왜 그렇게 욕하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억울했다.
그야 나는 아셋 코넬리우스이지만 아셋 코넬리우스가 아니니까.
간단하게 말하고 넘어가면 나는 빙의자다.
그것도 방금 따끈따끈하게 빙의한 참이다.
일단 억울한 건 제쳐두고 이곳이 '용사 학교 에르바스'속이 맞는다면 지금이 정확하게 어느 시점인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재빠르게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니고, 아니야... 찾았다!'
찬란한 금발과 그와 같은 색의 눈동자를 가진 소년, 분명 셀리온 제국 제2황자 아르막 마르티아셀리온. 아르막 황자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아직 주인공인 카론이 입학하기 전이 분명하다.
카론이 입학해서 처음 만난 아르막 황자는 분명 2학년 선배의 위치에 있었으니까.
그나마 지금 시험장에 아르막 황자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 덕분에 현재 진행 상황이 어디쯤인지 눈치챘으니까.
이로써 내가 해야 할 것은 정해졌다.
이 시험에 떨어져서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용사 학교 에르바스'는 주인공인 카론의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다른 게임도 당연하게도 주인공 중심에 게임으로 진행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 정도가 엄청나게 심하다.
다른 학년 학생들은 거의 언급조차 안될뿐더러 주인공의 학년 더 축소하면 주인공이 소속될 학급으로 모든 주요인물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아셋 코넬리우스, 마지막으로 말한다. 바로 시작해라!'
내가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옆에 서 있던 세드릭 교수의 인내심이 한계인 듯하다.
나는 목검을 두 손으로 쥐고 어설픈 자세를 취했다.
당연하게 어설플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야구배트조차 휘두른 적이 없으니까.
그만큼 운동과 담을 쌓아놓고 살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세드릭은 한숨을 쉬었다.
어찌 되었든 시험은 치러야 했기에 나는 목검을 휘둘렀다.
'흐아앗'
갑옷을 두른 허수아비에 그저 평범한 목검을 휘두른 탓일까.
부딪혔을 때 나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목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놓친 목검은 공중으로 높게 날아올라 정확하게 세드릭 교수에 정수리를 가격했다.
-따악.
아, 조졌다.
'아셋 코넬리우스! 너는 진급 시험이 장난이냐!'
'죄송합니다. 세드릭 교수님.'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90도의 각도로 사죄를 박았다.
분명 시험을 떨어질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세드릭 교수의 얼굴에 목검을 날려버릴 생각까지는 하지도 않았다.
아셋 코넬리우스는 분명 글러먹은 녀석이었다만 인성은 몰라도 육체적인 부분에서는 나 또한 그만큼 글러먹은 것이다.
세드릭 교수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화를 내는 것이 당연?
살며시 고개를 들어 세드릭 교수를 바라보자 그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세드릭 교수님?'
'크흠, 어찌 되었든 아셋 코넬리우스. 너는 진급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러므로 내년부터 신입생들과 함께 처음부터 다시 수업을 듣게 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우선 목표는 달성했다.
시험에서는 떨어졌고 유급하여 주인공 일행과 함께 1학년부터 같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
'아셋 코넬리우스, 우선 자리로 돌아가도록. 다음!'
세드릭 교수는 나를 다른 학생들이 있는 쪽으로 보내고 다음 학생을 불렀다.
나는 학생들이 모여있는곳으로 가 빈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 방금 봤어? 그 아셋 코넬리우스가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거?'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야, 우리만 놀랐겠냐? 방금 세드릭 교수님조차 놀라서 벙찌셨잖아. 살다 살다 아셋 코넬리우스가 평민한테 고개 숙여 사과하는 건 처음 봤다.'
자리에 앉자 주변에서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은 내가 시험에 떨어진 것보다 마지막에 보인 사과하는 모습이 더 충격적인 모양이다.
'도대체 어떤 생활을 했으면 '누구나' 붙는 시험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사과하는 모습에서 다들 놀라는 거냐.'
그렇다.
방금 내가 치른 시험은 아무리 둔재라 할지라도 떨어질 수가 없는 시험이다.
정확히는 이곳 에르바스에 다닐 정도에 학생이라는 선에서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용사 학교 에르바스'에서 이 시험을 떨어진 인물은 단 한 명.
'둔재 중의 둔재'라고 불리게 되는 카론뿐이니까.
주인공인데 시험에서 떨어지면 그대로 'GAME OVER'인 거 아니냐고?
맞다.
배드 엔딩 13. '둔재 중의 둔재'
'용사 학교 에르바스'는 여러 가지 엔딩이 존재하며 그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학교 내부에서 활동 말고도 학교 외부에서 해야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러다가 학교 내부에서 쌓아야 할 성적이 부족하게 될 경우 진급에 실패하고 발생하는 배드 엔딩이 바로 이 경우다.
-'에르바스 설립 후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지 못한 학생은 네가 처음이다.'
이 엔딩을 보게 되면 나오는 대화로 세드릭 교수가 카론에게 말한다.
'그럼 지금은 내가 최초란 거잖아.'
[ 축하드립니다. '둔재 중의 둔재' 업적을 최초로 완료했습니다. ]
머릿속에서 익숙한 효과음이 들려오고는 눈앞에 낯익은 상태 메시지가 보였다.
진짜냐...
우선 나는 엔딩을 본 것으로 인식된듯하다.
그렇기에 게임에서처럼 업적 획득 화면이 나타난 것일 테니까.
그럼에도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상태 메시지 너머로는 아직도 학생들이 둘러앉아 있으며 그 너머로는 세드릭 교수와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 서있으니까.
'지금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내가 주인공이 아니기에 그저 업적으로 인정만 된 것뿐인가.'
정답은 알 수 없다.
지금 나는 아직 카론을 만나지조차 못했다.
그렇다고 만난 이후에 섣부르게 다른 배드 엔딩을 시도해 볼 수도 없다.
이 경우에야 특이한 것이지, 기본적인 배드 엔딩이란 것은 주요인물의 죽음을 뜻하니까.
'그러고 보니 엔딩을보면 보상을 줬을텐데.'
결과야 어떻든 나는 엔딩을 본 것이다.
배드 엔딩을.
게임에서는 모든 엔딩을 업적으로 나누어 보상을 지급했다.
'분명 이 업적 보상이 '종합 기초 스킬북'이었던가.'
[ 보상으로 '종합 기초 스킬북'을 획득했습니다. ]
다시 한번 머릿속에서 익숙한 효과음이 들려오고는 눈앞에 상태 메시지가 보였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거잖아.'
'종합 기초 스킬북'이 엄청난 성능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은 아니다.
말 그대로 기초 중의 기초적인 스킬들만 들어있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아셋 코넬리우스의 상태는 확인해 본 적 없지만 분명 기본적인 스킬조차 없는 상태일 것이 뻔할 테니까.
'스킬북은 게임대로라면 기숙사 책상에 올려져 있으려나?'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와중 문득 더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래서 아셋 코넬리우스가 누구야?
나는 분명 '용사 학교 에르바스'의 모든 엔딩을 볼 정도의 골수 팬이다.
코넬리우스 가문이라 하면 게임을 진행하면 계속 나오는 가문이다.
무려 코넬리우스의 가주는 '검성'이라 불리는 존재니까.
그리고 그의 자식들 또한 검성의 후계자들이라 불리며 교사와 선배로 등장하니까.
하지만 그중에서 아셋 코넬리우스라고 불린 인물은 없었다.
애초에 아셋 코넬리우스가 그 정도의 이명으로 불릴 정도면 이런 실력일 리가...
떠올랐다.
비중이 없으니 당연하게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비중이 없는 게 어느 수준이면 아셋 코넬리우스는 작중 얼굴을 비춘 적이 없다.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 다른 가족의 입으로 언급되었을 뿐이니까.
-'나에게는 총 세 명의 자식이 있네. 다들 두 명이라고 착각하지만 말이지.'
-'동생들도 이 광경을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아, 누님 말고 동생이 있긴해. 어느 순간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지만 말이야.'
언급만 되었지 작중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나온 적이 없다.
'이러니 기억이 안 날 수밖에 없지.'
훗날 차기작 캐릭터로 개발진이 준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차기작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오도록.'
세드릭 교수가 마지막 순번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곰곰이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진급 시험도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다.
'마지막은 아르막 황자인가?'
멀리서도 그의 용모는 눈에 띄었다.
당연하게 황자라는 지휘의 인물인 것도 있지만 그 또한 카론과 학년은 달라도 주요인물 중 하나니까.
나는 집중해서 그를 지켜보았다.
'준비가 되었으면 시작하게.'
세드릭 교수는 말을 마치고는 거리를 벌렸다.
그와 동시에 아르막은 자세를 취했다.
내가 취했던 자세와는 다르게 아름답고 균형이 잡힌 자세.
서서히 그의 목검에서 금빛이 기운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오오, 진짜다. 진짜 오러야.'
이번 시험의 목적은 기초적인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가.
지금 아르막이 보인 오러 양은 절대 기초가 아니지만 서도.
아르막은 그대로 검을 사선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댕겅-
그가 그린 검로대로 허수아비는 두 동강이 났다.
그 광경을 눈앞에서 바라보고 나서 드디어 실감이 났다.
'진짜로 '용사 학교 에르바스'안으로 들어왔구나.'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어떻게든 주인공과 함께 엔딩을 본다.
배드 엔딩이 아닌 해피 엔딩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