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물속성 헌터
- 등록일2024.10.17
- 조회수1327
꺄아아악!
으아아악!
비명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아름답던 도시의 경관은 피로 얼룩져지고 불에 그을렸다.
하늘을 뚫을 기세로 높이 올라섰던 건물들은 모두 먼지가 되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산을 쌓았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평화롭던 도시는 이젠 생지옥이 돼버렸다.
동시에 현우의 행복했던 일상도 사라졌다.
“하하하하! 즐겁다! 즐거워!”
생지옥의 중심에는 한 남자가 입이 찢어지도록 웃고 있었다.
녀석의 양손엔 그를 제압하러 온 헌터들의 피가 묻어있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아아...대체...왜!”
현우는 길바닥에 주저앉으며 흐느꼈다.
20대의 평범한 청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처벅...처벅...처벅...
녀석이 사람들의 피가 모여 만들어진 웅덩이를 가로질러 현우에게 향했다.
“네가 마지막이다.”
“대체...왜...”
현우는 잠긴 목소리를 억지로 짜냈다.
“왜...그랬어!”
“왜? 벌레를 죽이는데 이유가 필요하나?”
순간 현우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녀석에겐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대한 별다른 개념 따윈 없었다.
그저 눈앞의 살육을 즐기는 것뿐이었다.
딱!
“지옥의 업화.”
화르르!
녀석이 손가락을 튕기자 뜨거운 불길이 솟아올랐다.
불길은 빠르게 번지며 현우의 집으로 닥쳤다.
“안돼!”
현우는 다급히 달려갔지만, 지옥 불을 떠올리게 하는 뜨거운 열기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제야 볼만한 표정이군.”
녀석은 반쯤 정신이 나간 현우의 표정을 보며 소름 돋는 미소를 지었다.
현우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사슴을 바라보는 사자의 눈.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눈 이었다.
“너는 무언가 알아차린 모양이구나.”
푹!
녀석의 오른팔이 현우의 가슴을 관통했다.
커헉!
현우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 봤자지만.”
녀석은 온통 피로 얼룩져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또 한 번 미소를 짓고는 자리를 떠났다.
화르르!
현우의 집을 새까맣게 태워버린 불길은 온 도시를 집어삼키려는 듯 그 몸집을 계속 키워나갔다.
‘뜨겁다...’
마지막으로 둘러보는 도시의 풍경은 참담했다.
뜨겁게 불타오르지 않는 곳이 없고 생기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이미 죽어서 지옥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투둑...투둑...투둑...
그때 하늘에서 몇 방울의 물이 떨어졌다.
투두둑...투두둑....투두둑...
솨아아악!
조금씩 떨어지던 물방울들은 비가 되어 내렸다.
도시를 전부 집어삼킬 것 같았던 불길은 순식간에 작은 불씨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시원하다.’
현우는 차갑게 식어가는 도시 속에서 눈을 감았다.
[깊은 심연의 패왕에게 선택받습니다.]
“...”
***
띠...띠...띠...
익숙한 기계음.
코끝을 자극하는 약품 냄새.
불편한 침대.
“으윽...여긴?”
“병원입니다.”
현우의 옆에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 한 명이 서 있었다.
“어떻게...된 거죠...”
“환자분은 던전 브레이크의 유일한 생존자십니다.”
“던전 브레이크요?”
던전 브레이크.
오랫동안 방치된 유적이나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대량으로 빠져나오는 대격변 이후 생긴 재앙이다.
“근방의 방치된 공사장에서 터졌다고 하더군요.”
“윽!”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아직 가슴의 상처가 심각해요.”
의사는 움직이려는 현우를 겨우 시켰다.
‘그 목소리는 뭐였을까?’
현우는 불현듯 쓰러지기 전 들렸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저기... 제가 쓰러진 곳에 다른 사람이 있었나요?”
“사람이요? 구조대가 환자분을 발견했을 때는 혼자 쓰러져 계셨다고 했습니다.”
당연히도 그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있을 사람은 없었다.
“혹시... 보이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던가... 그런?”
“아! 아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잘못 들은 것 같아요.”
“다행입니다.”
의사는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준 채 자리를 떠났다.
‘그 목소리는 뭐였을까... 정말 잘못 들은 건가?’
그저 잘못들은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시계가 9시를 가리키자, 벽 한편에 걸린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9시 뉴스 시작합니다.
-어제 오후 한 시경 강남역 근처 도시가 미상의 몬스터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원인은 근처의 방치된 공사장에서 생성된 게이트로 조사되었습니다.
-몬스터는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직후 피해 도시로 달려갔으며 약 한 시간 만에 도시를 초토화하고 달아났습니다.
-몬스터의 제압 과정에서 A급 헌터 두 명이 사망했으며 민간인 2천여 명 또한 사망했습니다.
-협회는 미상의 몬스터에게 S급 위험 몬스터로 지정 후 전국에 토벌령을 내렸습니다.
-다음으로는 몬스터 행동 전문가 강형운님과 인터뷰 나눠 보겠습니다.
꼬르륵!
한창 집중할 때 배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뭐라도 먹자...”
현우는 환자복에 걸칠 외투 하나와 지갑을 가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저녁때가 한참 지난 늦은 시간에 아직도 문을 연 식당을 잘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길가에 나와보니 한 백반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드르륵!
문을 여니 따듯한 온기가 반겨줬다.
식당에는 할머니 한 분만이 의자에 앉아 계셨다.
“백반 하나 주세요.”
주문을 받은 할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가스 불이 켜지는 소리가 나더니 금세 정성스러운 백반 한 상이 완성됐다.
현우는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드르륵...쾅!
그때 한 무리가 문을 세게 열며 들어왔다.
“어이! 아직 장사 하시나?”
“하긴 합니다만, 저희 영업시간이 곧 끝나서요.”
“그게 언제 까진데? 금방 먹고 나갈 거니까 잔말 말고 술이랑 찌게 하나 내와!”
“네...”
다섯 명의 무리들은 조금도 예의를 갖추지 않은 채 가게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술판을 벌였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마감 시간을 한참 넘기고도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고성방가를 이어 나갔다.
“저기...손님 저희 영업시간이 지나서요...”
“뭐! 그게 뭐 어쩌라고? 먹다 말고 나가라 이거야? 콱 씨! 우리가 누군 줄 알아?”
한 명이 당당하게 자신의 헌터 자격증을 보여줬다.
D급 헌터 이호진.
“이거 안 보여! 어? 난 무려 D급 헌터라고! 그것도 D급 최상위! 심지어 내 뒤에 있는 놈은 C급이야!”
그의 뒤에는 조용히 물만 마시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호진아. 저놈 봐봐. 아까부터 우리 계속 쳐다보는데?”
무리 중 한 명이 구석에 있던 현우를 가리켰다.
물론 현우는 그들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그러겠는가?
그냥 밥값을 결제하려고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미 잔뜩 취한 저놈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너 뭐야? 뭔데 쳐다봐? 어! 싸울래?”
“호진아. 저놈 겁먹었나 본데? 아무 말도 못 하잖아?”
“정말이네? 야! 무섭냐? 어? 왜 쳐다보냐고! 불만 있어?”
현우는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겁먹은 건 아니었다.
자신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메시지를 읽느라 정신이 팔려있을 뿐이었다.
[퀘스트 : 눈앞의 적 제압 (0/1). 제한 시간 : 5분. 퀘스트 실패 페널티 : 사망.]
‘이 목소리는...!’
쓰러지기 전 들었던 그 음성이 다시 한번 들려왔다.
‘페널티가... 사망?’
눈앞의 적을 제압하지 못하면 죽는다니... 숨이 턱 막혀왔다.
동시에 두뇌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앞의 적은... 이호진 이라는 취객일 텐데. 이 녀석을 어떻게...’
술에 찌든 채 추태를 보이고 있지만 상대는 엄연한 D급 헌터였다.
E급 헌터 한 명을 이기는데 건장한 성인 남성 두 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건장하기는커녕 환자 신세인 현우가 D급 헌터를 이길리는 만무했다.
‘젠장...!’
당장이라도 눈앞의 주먹이 자신을 향해 날아올 것만 같다.
페널티가 사망이라는 퀘스트의 남은 시간은 어느덧 2분이 되어간다.
도망칠 수도, 때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야! 무시하냐? 이 새끼가!”
기어코 호진의 주먹이 날아온다.
현우는 눈을 찔끔 감았다.
‘어라?’
한참이 지나도 주먹이 닿지 않았다.
감았던 눈을 조금 떠본다.
‘뭐지?’
D급 헌터의 주먹이 날아오는 게 아주 천천히 보였다.
‘이 정도 라면...?’
휙!
“어?”
휙!
“어어?”
휙! 휙! 휙!
날아오는 모든 주먹을 피했다.
느린 공격을 피하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녀석들은 제법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진호 많이 취했네. 한대도 못 맞추냐.”
“닥쳐! 지금 정리할 거니까.”
호진의 손끝에서 마력이 모인다.
“이것도 피해 봐라!”
마력을 두른 주먹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느리게 보이지 않았다.
‘이건...못 피하는데...?’
[스킬 :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촤악!
콰당탕!
그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갑자기 물컵에 담겨 있던 물이 녀석의 눈을 향해 날아갔다.
정통으로 맞았는지 호진은 그대로 넘어지며 식탁에 머리를 강하게 박고 기절했다.
“호진아! 저 새끼 뭐야! 잡아!”
구경 중이던 다른 헌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만!”
침묵을 지키던 C급 헌터가 소리쳤다.
“한심한 새끼들. 술 먹자고 부르더니 또 깽판이냐? 너희 뒷바라지도 질렸다. 쯧!”
“주원아! 어디가!”
C급 헌터가 가게를 나가자, 무리 중 한 명이 쓰러진 호진을 엎고 뒤따라 나갔다.
그나마 덜 취한 녀석이 밥값을 결제하고 튀어 나갔다.
“아이고... 청년. 고마워요! 이 은혜를...어찌 갚아야...”
“아...아뇨! 괜찮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현우도 쫓겨나듯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왔다.
“허억...허억...”
쿵...쿵...쿵...
심장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평생토록 싸움이라곤 초등학생 때 친구와 조금 다퉈본 것이 전부인 현우에게 오늘인 새로운 충격이었다.
“캬!”
그리고 처음 경험해 본 승리의 맛은 아주 달콤했다.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건... 대체 뭐지?’
메시지에 손을 뻗으면 통과된다.
아까의 상황을 봤을 때 현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도 않는듯했다.
띠링!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000골드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름 : 백현우
레벨 : 2 (0/300)
칭호 : 없음.
직업 : 없음.
보유 골드 : 1000
[스탯]
미분배 스탯 포인트 : 3
체력 : 5 근력 : 5 마력 : 5 지능 : 5 민첩 : 5
[스킬]
액티브 스킬 : 물의 권능
패시브 스킬 : 유연한 사고, 물의 정신
“이...이게 뭐야!”
[패시브 스킬 : 유연한 사고가 발동됩니다.]
“어...”
감정이 차분해진다.
시스템에 모든 정보가 한순간에 들어온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이 빠르고 간결하게 정리된다.
마치 내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가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상하리만치 정신이 맑아졌다.
“이게...스킬의 효과?”
[패시브 스킬 : 유연한 사고]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도 동요하지 않고 유연하고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계산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집니다.
[패시브 스킬 : 물의 정신]
물을 항상 고요하고 견고합니다. 대부분의 정신 공격 스킬을 방어합니다. 사용자의 레벨에 따라 효과가 증가합니다.
[액티브 스킬 : 물의 권능]
물 원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레벨에 따라 효과가 증가합니다.
“이건...”
모든 스킬을 확인하고 나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
백반집에서 주먹이 보였던 것도 어제에 일이 트라우마가 되지 않은 것도 모두 스킬 덕분이었다.
비록 어떤 계기로 능력을 얻은 건지, 이게 헌터들이 말하는 각성이 맞는 건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지만,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라면... 그놈을!”
단지, 현우의 모든 걸 불태워 버린 그놈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2화
백반집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의사에 주의 사항을 무시한 채 움직인 대가는 혹독했다.
상처 부위가 벌어진 탓에 웬만한 진통제로는 도저히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어쩔 수 없이 일주일을 병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보냈다.
다행히도 손가락 정도를 움직이는 건 괜찮았기에 핸드폰으로 꽤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 메시지와 의문에, 목소리에 대한 것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메시지, 허공에 메시지 보임, 던전 브레이크 후유증 등등 어떤 키워드를 입력해도 관련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이건 오직 ‘나’ 백현우에게만 일어난 현상인 듯하다.
뭐가 됐든 스킬이 생겼으니, 감옥에 갇히기 싫다면 헌터 등록을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협회행 버스에 탑승했다.
부우우웅!
이른 아침 시간에 버스는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다.
운 좋게도 편히 갈 수 있었다.
-이번 정류장은 헌터 협회... 헌터 협회입니다.
정류장 근처에는 처음 보는 가게가 많이 보였다.
마정석 거래소, 무기 판매점, 헌터 인력소 등등 모든 게 신기했다.
길게 늘어선 가게들을 끝으로 거대한 헌터 협회 건물이 보란 듯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와...”
그 크기는 가까이서 보니 더욱 놀라웠다.
아무리 고개를 들어도 그 끝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입구에는 방문자를 환영하는 메시지와 협회의 규율이 쓰여 있는 목판 하나가 걸려있었다.
정문을 지나 조금 들어가니 직원 한 명이 사람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방문하셨나요?”
“헌터 등록하러 왔습니다.”
“네. 서류 접수 해드리겠습니다.”
직원은 능숙한 솜씨로 관련 서류를 처리하더니 현우에게 확인증을 건네주었다.
“등록하는 곳은 저쪽에 있습니다.”
그녀의 손끝은 오른쪽 복도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현우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와...”
복도 끝에 다다르니 저 멀리 끝이 겨우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의자에 앉은 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헌터 등록을 하기 위해 온 듯 보였다.
“쳇.”
이럴 줄 알고 빨리 왔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비슷했다.
털썩.
다행히도 의자 수가 충분해 편히 기다릴 수는 있었다.
“...그거 들었어?”
옆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여수에 나타난 게이트 말하는 거지? 크기가 어마어마하던걸?”
“크기가 문제가 아니야. 그 게이트... 들어갈 수가 없데!”
“장난해? 그런 게이트가 어딨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정말이라니까? 김우석이 들어가려고 했는데 오히려 튕겨 나왔다잖아.”
“김우석이라면... 봉황 길드 마스터? 그런 사람도 못 들어가면 대체 누가 들어간다고...”
“그렇게 말이야... 뉴스에서도 엄청나게 떠들잖아. 던전 브레이크를 기다리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나 뭐라나...”
“던전 브레이크? 미친 거지? 지난주에도 던전 브레이크 때문에 강남 주변 도시가 쑥대밭이 됐잖아!”
“그렇게... 이러다 여수까지 거제도처럼 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옆 사람들은 그 뒤로도 한참을 떠들었다.
-백현우 님. 들어오세요.
덕분에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이건...?’
안에 들어가니 순백의 마정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죠?”
“이건 백색 마정석 입니다. 보시다시피 헌터들의 등록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
잠시 후 직원이 어디선가 기계를 하나 가져와 마정석에 연결했다.
“측정이 시작되면 마정석에 마력을 흘려보내시면 됩니다.”
삐리릭... 삐빅.
마정석을 둘러싼 기계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작동을 시작했다.
‘지금인가?’
그는 마정석 위에 손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집중...!’
그리곤 지그시 눈을 감으며 집중을 이어갔다.
***
‘아오! 왜 이렇게 안 되냐!’
현우는 몇 분씩이나 눈을 감은 채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이게 아닌가?’
헌터 등록을 마친 헌터들의 후기들을 보아도 마력을 흘려보내는 건 다들 쉽다던데...
현우는 조바심만 날 뿐이었다.
‘아! 그래...’
그때, 병원에서 읽었던 헌터 관련 책의 한 부분이 생각났다.
-간혹 헌터들 중 마력을 흘려 보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만약 당신이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겠다. 떠올려라, 자신의 힘을. 화염 계열이라면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을, 바람 계열이라면 매섭게 휘몰아치는 폭풍을 말이다.
‘이거다!’
직감적으로 이것이 정답임을 알 수 있었다.
‘떠올리는 거야.’
현우는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거친 파도를, 세차게 내리는 폭우를. 시간이 멈춘 듯 잔잔하고 고요한 물을.
스르륵.
순간, 손끝에서 무언가 느껴졌다.
조금은 간질간질한 느낌이었다.
‘이게 마력이구나.’
스르륵...스륵...
한 번 방법을 깨달으니, 그다음은 쉬웠다.
삐...삐...삐
마력을 머금은 마정석이 환한 푸른빛을 띠며 찬란하게 빛났다.
‘오...’
그 모습이 마치 어두운 밤하늘 속 밝게 빛나는 별 같았다.
***
“D등급입니다.”
직원이 현우에게 헌터 자격증을 건네주며 말했다.
“예? 왜...왜요? 밝게 빛났잖아요!”
“그래서 D등급인 겁니다.”
“그게.. 무슨...?”
당황한 현우에게 직원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마정석의 밝기는 마력의 농도입니다. 밝을수록 농도가 얕은 거죠. 이는 곧 가지고 계신 스킬의 위력을 뜻합니다. 그러니, 아주 밝게 빛난다는 건 그만큼 스킬이 빈약하다는 거예요.”
“아...”
아무래도 색깔이 예쁘다고 높은 등급을 받는 게 아니었나 보다.
“그나마 마정석을 빛나게 해서 D등급 이신 거예요. 빛도 못 내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 네.”
빛도 못 내는 사람들은 E급인가 보다.
“안녕히... 계세요.”
현우는 자신의 헌터 자격증을 손에 쥔 채 협회를 빠져나왔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가 되어 있었다.
“어휴...”
복잡한 감정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 뭘 해야 할지, 뭘 목표로 삼아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띵!
핸드폰의 알람음이 울렸다.
‘뭐지?’
-재난 지원 주택 안내...-
“아...!”
저번 던전 브레이크로 집이 불타버리며 잘 곳이 사라졌었다.
입원하는 동안은 병원에서 잤지만, 퇴원한 후부터가 문제였다.
그래서 미리 주택 지원을 신청해 놓았었는데 오늘 입주할 수 있는듯했다.
“위치가... 가깝네?”
협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당장 차비조차 빠듯했기에 걸어가기로 했다.
***
“여긴가...?”
문자에 적힌 위치를 따라가 보니 조금 허름한 집 한 채가 보였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부터 심상치 않았다.
“콜록! 콜록! 으...!”
집 곳곳에는 오랫동안 방치되었는지 먼지가 수북했다.
“하... 청소부터 해야겠네.”
현우는 옷가지를 대충 정리한 채 대걸레를 들고 집안 곳곳을 전부 닦기 시작했다.
거실, 부엌, 옷방 등등 집이 제법 넓은 탓에 시간이 오래 걸릴듯했다.
탁!
솨아악!
“아오!”
청소하다가 실수로 물이 가득 담겨 있는 양동이를 엎어 버렸다.
덕분에 방금 닦은 거실 바닥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이 순간만큼은 집을 다시 반납 하고 싶었다.
“아아! 언제 다 치워!”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어?”
흘렸던 물들이 다시 양동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거실 바닥은 조금의 물기도 남기지 않은 채 다시 깨끗해졌다.
“이거다!”
그리고 동시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촤아악!
촤악!
현우는 미친 사람처럼 집안 전체에 물을 뿌려댔다.
“흐읍!”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바닥에 있던 물이 현우의 손끝을 따라 이동하며 곳곳에 먼지를 닦아냈다.
“진짜 편한데?”
당연히 물걸레로 닦는 것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허름했던 집은 단숨에 깨끗한 새집으로 변했다.
몇 가지 가구들을 들여놓으니 제법 잘 사는 집 같아 보였다.
똑. 똑. 똑.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배달이요.”
타이밍 좋게 저녁으로 시켰던 짜장면이 도착했다.
삑!
현우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마침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하하하!”
오랜만에 즐겁고 맛있는 저녁을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설거지가 생겼다.
“이것도 잘하면...?”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그렇지!”
설거지 또한 주방세제만 뿌려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흠...”
어째 점점 헌터와 거리가 멀게 스킬을 쓰고 있었지만, 편한 건 편한 거였다.
현우는 내친김에 어디까지 쓸 수 있나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우선, 물컵부터 시작해 보았다.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음.”
이 정도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은 채 움직일 수 있었다.
솨아아아아!
이번에는 양동이에 물을 반 정도 받아놓고 실험해 보았다.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안 되나?”
물은 조금 찰랑거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흡!”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으...!”
조금의 기합을 들였더니 힘겹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것도... 되려나?”
현우는 세면대에 물을 가득 채우고 바라보고 있었다.
“흐으읍”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복부에 기합을 가득 넣은 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물은 찰랑거리지도 않았다.
“...무리네.”
아직은 작은 양동이 정도가 한계치인 듯했다.
띠링!
[스킬 : 물의 권능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스킬 : 물의 권능에 가려져 있던 문구가 추가됩니다.]
“오?”
[액티브 스킬 : 물의 권능(+1)]
물 원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레벨에 따라 효과가 증가합니다.
무게 제한 : 7kg.
7kg이면 작은 양동이 정도였다.
[아직 분배하지 않은 스탯이 있습니다. 미분배 스탯 포인트 : 3]
“스탯...? 아!”
지난번 헌터와 싸웠을 때 클리어한 퀘스트가 기억났다.
그때 레벨업을 해놓고 지금까지 까먹고 있었다.
[스탯]
미분배 스탯 포인트 : 3
체력 : 5 근력 : 5 마력 : 5 지능 : 5 민첩 : 5
‘흠... 체력이나 지능이 좋으려나...?’
고작 3포인트만 있었기에 신중히 골라야 했다.
잠깐... 스킬은 ‘무게’ 제한 이잖아?
그렇다면...?
[스탯 분배가 완료됐습니다.]
[스탯]
미분배 스탯 포인트 : 0
체력 : 5 근력 : 8 마력 : 5 지능 : 5 민첩 : 5
[스킬 : 물의 권능의 무게 제한이 올랐습니다.]
[액티브 스킬 : 물의 권능]
물 원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레벨에 따라 효과가 증가합니다.
무게 제한 : 9kg.
“역시!”
무게 제한은 근력을 높이면 같이 올라갔다.
[스킬 :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오오!”
처음에는 힘겨웠던 양동이 정도의 물도 손쉽게 움직여졌다.
“후우우...”
한바탕 물난리를 쳤더니 금세 몸이 피곤해졌다.
아직 침대가 없기에 거실 소파에 누웠다.
매일 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낯선 천장이 현우를 반겨주었다.
이미 불타버린 집의 추억을 생각하며 궁상맞게 울고 싶어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없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처음 느끼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이 피곤을 이길 수는 없었고 그렇게 잠에 들었다.
늦은 저녁의 집안은 잔잔한 물처럼 고요했다.
3화
삐비빅! 삐비빅! 삐비빅!
“으...”
시끄러운 알람이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어푸... 어푸...”
비몽사몽인 정신을 깨우기 위해 안 하던 찬물 세수까지 했다.
“이거 챙기고... 저거 챙기고...”
현우는 평소와 달리 바쁘게 움직였다.
“던전에는... 뭐가 필요 하려나?”
어제 협회에서 추천받은 게이트에 가기 위해 이러고 있었다.
“이정도면... 됐나?”
뭘 이리도 잔뜩 쑤셔 넣은 것인지 곧 터지기 직전의 가방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가자!”
그렇게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
“여긴가.”
현우는 협회가 알려줬던 곳으로 도착했다.
우웅! 우웅...
잘 찾아왔다는 듯 게이트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반겨주었다.
“위치가 이따위면 정확한 좌표를 줘야지! 어휴!”
산속을 헤맨 덕에 아침에 출발했지만, 지금 시간은 점심을 넘어있었다.
우웅...
“오?”
우웅!
“오!”
게이트에는 사람이 다가갈수록 소리가 커지는 성질이 있는듯했다.
우웅... 우웅! 우웅...
“재밌는데!”
현우는 그 앞에서 자신의 목적을 잊어버린 채 어린아이처럼 뛰놀았다.
“콜록! 콜록! 크흠...”
그때 누군가 뒤에서 헛기침하며 다가왔다.
“누... 누구세요...”
현우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자각해서인지 고개를 떨군 채 나지막한 소리로 물어보았다.
“제 이름은 이수빈. D급 게이트의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가시려면 본인의 사인이 필요한데... 조금 늦게 올걸 그랬나요?”
“...”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인은... 어디에...”
“여기랑 저기, 그리고 여기...”
현우는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재빠르게 서명을 마쳤다.
“다 한 거죠?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곤 민망한 나머지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
“아야!”
처음 들어간 던전의 바닥은 아주 딱딱했다.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이 아니었다면 크게 다칠 뻔했다.
“우와...”
어두우리라 생각했던 것 과는 달리 곳곳에 박힌 마정석에서 나오는 빛이 던전 전체를 훤히 비춰주고 있었다.
‘예쁘다.’
심지어 그 광경이 제법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취이익!”
하지만, 그런 태평한 생각은 그리 길게 가지는 못했다.
‘몬스터?’
“취이... 인간!”
던전은 입구부터 몬스터가 있었다.
사람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인지 잔뜩 흥분한 고블린 두 마리가 현우를 반겨주었다.
“취익!”
“취이이! 인간!”
고블린 두 마리가 매섭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흐읍!”
퍽!
“췩! 취이이...”
‘뭐... 뭐지?’
앞서 달려오던 고블린이 현우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취이익!”
퍽!
“취이...”
“어?”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고블린 역시 가벼운 펀치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전리품 : 고블린 털가죽(X2)을 획득했습니다.]
[전리품이 인벤토리로 이동됩니다.]
“이게... 근력?”
어젯밤 스탯을 미리 찍어 놓은 게 빛을 발했다.
“전리품은... ‘인벤토리’로 이동됐다고?”
촤라락!
“뭐야!”
‘인벤토리’라고 말하자 허공에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뭐지?’
손을 집어넣어 보아도 느껴지는 건 없었다.
“분명 ‘고블린 털가죽’이 이곳으로...”
착!
“어?”
원하는 물건의 이름을 말하자 무언가 잡혔다.
쑤욱!
그대로 손을 빼 올리자, 고블린 털가죽이 꺼내졌다.
“이거 설마...”
현우는 좋은 생각이 난 듯 짐이 가득 담긴 가방을 구멍 앞으로 가져왔다.
“음...”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안에 담겨있던 짐들을 전부 그 안으로 털어 넣었다.
“곡괭이. 장갑. 물병. 손전등.”
그러곤 자신이 들이 부은 짐들은 하나씩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분명 아무렇게나 던지듯 넣었음에도 장비들은 어디 하나 상처 나지 않은 채 원상태로 유지되었다.
심지어 보관할 수 있는 수량에 제한 따위는 없는 듯했다.
“이... 이건.”
인벤토리는 현대 과학을 아득히 뛰어넘는 엄청난 기능이었다.
“휴...”
덕분에 무거웠던 짐을 덜어내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취이익!”
“취익! 인간!”
‘이런!’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무른 탓인지 짐 정리를 끝내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수십 마리의 고블린에게 둘러싸인 뒤였다.
아무리 보아도 방금처럼 펀치 몇 번으로 타개할 상황은 아닌듯했다.
“취익! 췩! 취이!”
동료의 피 냄새를 맡은 놈들은 당장이라도 현우를 덮칠 듯 날을 곤두세웠다.
‘어떡하지? 방법이 없나? 생각! 생각해라!’
[유연한 사고가 발동됩니다.]
‘어...?’
스킬의 발동과 함께 세상이 느리게 보였다.
그렇다고 빠르게 행동할 수는 없었지만, 주변의 사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저건!’
현우는 자신을 둘러싼 놈들 너머에 제법 넓은 웅덩이를 발견했다.
눈앞에 고블린들 정도는 담가버리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였다.
“취이익!”
‘안돼!’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스킬이 풀리며 순식간에 고블린 한 마리의 공격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휙!
재빠르게 옆으로 굴러 공격을 피한 뒤 웅덩이를 향해 달렸다.
“취익! 놓치지 마라!”
고블린들 역시 빠르게 추격해 왔지만, 현우를 따라잡기에는 늦었었다.
“잘 가라. 초록 대가리들.”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촤아악!
거대한 물줄기가 고블린들은 덮쳤다.
체구가 작은 몬스터의 특성상 물살을 버티긴 어려웠고 서로 뒤엉킨 녀석들은 사이좋게 벽에 박혔다.
“허억... 허억...”
갑자기 무리한 탓에 몸에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이대로 가다간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블린 무리를 처치했습니다.]
[전리품 : 고블린 털가죽(X11)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연속된 레벨업의 보상으로 사용자의 상태를 회복합니다.]
“어? 오...!”
파란빛이 온몸을 덮더니 순식간에 피로감이 싹 사라졌다.
단지 그런 느낌만 든 게 아니라 삐걱대던 팔도 저리던 다리도 전부 멀쩡해졌다.
“스탯.”
이름 : 백현우
레벨 : 6 (400/750)
칭호 : 없음.
직업 : 없음.
보유 골드 : 1000
[스탯]
미분배 스탯 포인트 : 12
체력 : 5 근력 : 8 마력 : 5 지능 : 5 민첩 : 5
‘한 번에 4레벨이나 오르다니...’
한 번에 많은 몬스터를 처치해서인지 보상이 제법 짭짤했다.
[스탯 분배가 완료됐습니다.]
[스탯]
미분배 스탯 포인트 : 0
체력 : 9 근력 : 16 마력 : 5 지능 : 5 민첩 : 5
마력이나 지능스탯을 찍을까 고민도 해 보았지만, 당장 근력과 체력이 부족했기에 불확실한 선택을 미뤄두기로 했다.
[스킬 : 물의 권능의 무게 제한이 올랐습니다.]
[액티브 스킬 : 물의 권능]
물 원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레벨에 따라 효과가 증가합니다.
무게 제한 : 20kg.
한 번에 많은 스탯을 올린 덕분에 무게 제한이 확 늘어났다.
쾅!
갑자기 던전의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취익! 취이익! 인간!!!!”
‘저... 저게 뭐야!’
대충 보아도 현우보다 세배나 더 큰 몬스터가 등장했다.
[던전의 보스가 나타났습니다.]
“보스?”
녀석의 손에는 덩치에 맞는 커다란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취익! 나의... 나의 동족들이!”
쾅! 쿵! 콰광!
커다란 고블린은 다른 고블린의 시체를 보자 이성을 놓았는지 닥치는 대로 주변을 부수기 시작했다.
‘저건 맞으면 죽는다.’
띠링!
[퀘스트 : 고블린 부족장 처치 (0/1). 제한 시간 : 15분. 퀘스트 실패 페널티 : 사망.]
‘보스라며! 저걸 어떻게 잡냐!’
도저히 놈을 죽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도망치자.’
미끄덩!
“어...? 윽!”
현우는 바닥에 고여있던 물을 밟고 넘어져 버렸다.
“인간! 거기였구나!”
덕분에 녀석에게 위치를 들켜 버렸다.
“젠장!”
현우는 닥치는 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쿵! 쿵! 쿵!
“거기서라!”
그저 자기를 뭉개버릴 생각으로 달려오는 저 미친놈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헉... 헉...”
체력 스탯을 높인 덕에 원래보다는 오래 달릴 수 있었지만, 그것이 압도적인 피지컬 차이를 메꿔주지는 못했다.
‘눈을 노린다!’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취익! 취이익! 내... 눈이.”
놈은 얼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먹혔나?’
치명상을 입혔다는 생각도 잠시.
“크아악! 인간! 죽여버리겠다!”
[고블린 부족장이 광폭화 상태에 돌입합니다. 10분간 모든 능력치가 두 배 증가합니다.]
오히려 놈의 화만 돋워버렸다.
쾅! 쾅! 쾅!
‘미치겠네! 더 빨라졌잖아?’
놈과 현우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주의 : 퀘스트 종료 시까지 5분 남았습니다.]
‘벌써?’
이대로 도망만 가다가는 잡히기도 전에 죽을 것이 뻔했다.
“으아앗! 길이...!”
설상가상으로 눈앞에는 길이 끊어져 있었다.
“어우...”
아래는 내려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깊은 절벽이었다.
‘어떡하지? 뭔가 방법이... 아!’
현우는 무언가 생각난 듯 작은 미소를 띠었다.
쿵... 쿵... 쿵...
“인간! 드디어 궁지에 몰렸구나.”
“어쩌다 보니 독 안에 든 고블린 신세가 됐네?”
“끝까지 조잘조잘 말이 많구나! 죽어라!”
고블린 부족장이 현우를 으깨버릴 것처럼 돌진해 왔다.
“걸려들었군.”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그런 조잡한 공격은 안 통한다!”
“알아.”
현우는 날아오는 놈을 재빠르게 피하며 바닥에 물을 뿌렸다.
“인간! 감히... 안돼!”
고블린 부족장은 자신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채 절벽으로 미끄러졌다.
쿵!
절벽이 얼마나 깊었는지 떨어진 소리는 한참 뒤에야 났다.
“더럽게 힘드네! 뭐 저딴 게 D급 던전에 나오는 거야?”
[고블린 부족장을 처치했습니다.]
[전리품 : ???로 만든 몽둥이.]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3.000 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0레벨에 달성했습니다.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특별 보상?”
[스킬 : 물대포를 습득했습니다.]
[액티브 스킬 : 물대포]
지정한 곳으로 강한 물줄기를 발사합니다. 마력 스탯에 따라 위력이 증가합니다.]
소요 MP : 30
[스탯 창이 더 자세히 표시됩니다.]
이름 : 백현우
레벨 : 10 (600/1300)
HP : 400/900
MP : 100/100
“MP라... 지능을 찍어라 이건가?”
[스탯 분배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름 : 백현우
레벨 : 10 (600/1300)
HP : 900/900
MP : 370/370
칭호 : 없음.
직업 : 없음.
보유 골드 : 4,000
[스탯]
미분배 스탯 포인트 : 0
체력 : 9 근력 : 16 마력 : 8 지능 : 14 민첩 : 5
“음... 똑똑해졌나?”
체력이나 근력과는 달리 지능 스탯은 올린다고 해서 바로 무언가 바뀐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꼬르르륵...
?
긴장이 풀리자, 배꼽시계가 울렸다.
“나갈 시간인가...”
한 번에 8레벨이나 올린 꿀 스팟을 벗어나려 하니 아쉬움이 들었다.
***
던전에서 나와보니 해는 어느새 저물어 하늘을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다.
게이트가 정상쯤에 있어서 그런지 밤에도 밝게 빛나는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나오셨군요.”
‘이 목소리는...’
“언제쯤 나오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아직도 안 가셨네요?”
“당연히 못가죠. 분명 던전 탐사 시간은 세 시간이라고 체크하셨는데 다섯 시간 뒤에야 나오셨잖아요.”
“죄송... 죄송합니다.”
아무렇게나 사인을 했더니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초과근무는 수당이 더 나오니까요.”
“하하...”
“보스는...”
그녀는 현우의 엉망인 상태를 보더니 말끝을 흐렸다.
“잡았습니다!”
“예?”
“보스. 제가 잡았습니다.”
현우가 자신감 있게 인벤토리에서 보스의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방금 어디서 꺼내신 거죠? 그것보다 대체 어떻게...”
“운이 좋았습니다.”
“...아까 낮에 보여준 모습과는 다르게 꽤 실력이 있으시네요.”
“그... 그건.”
“장난입니다. 야산은 어두우니 조심히 내려가시길.”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혼자 유유히 사라졌다.
현우도 잠시 숨을 고른 뒤 도시의 야경 쪽으로 서서히 내려갔다.
4화
휘이이잉...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
“이곳은...”
분명 처음 보지만 그렇게 낯설지 않은 의문에 공간이 현우를 반겨주었다.
하늘은 온통 하얗고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메마른 땅과 처음 보는 문자로 도배된 커다란 석상뿐이었다.
쿠구구궁...!
“뭐... 뭐야!”
갑자기 땅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어!”
첨벙!
이내 땅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그 아래 깊디깊은 물속으로 빠졌다,
“어푸... 어푸푸... 어...윽...”
아무리 헤엄치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읍... 으읍...”
폐에는 물이 점점 차올라 숨이 막혀왔다.
“제발...! 좀!”
삐이이익!
“흐억...! 허... 여긴?”
귓가에 이명이 들리더니 금세 방으로 돌아왔다.
“...악몽?”
“살...려...줘”
“...?”
분명 방에는 현우밖에 없었지만,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살려...”
“누... 누구야!”
심지어 그 소리는 아주 소름 끼쳤다.
“제발... 나를 구해...줘.”
삐이이이!
“으윽! 머리가...”
“날... 구... 해...”
삐이이!
“끄아아악!”
벌떡!
“흐어억! 흐어... 허....”
현우가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짹... 짹짹... 째잭...
열려있는 창문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따듯한 태양 빛이 비쳤다.
침대와 잠옷은 온통 땀에 젖어있고 베개와 이불은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무슨...”
지난밤에 악몽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치 어느 세계선에 또 다른 나를 잠시 만난 느낌이었다.
그만큼 뭐라 이루어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한 기분이 맴돌았다.
저벅... 저벅...
익숙했던 집이 조금 무서워졌다.
스윽... 스윽...
항상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임하던 짐 싸기도 오늘은 조용히 임하게 됐다.
“... 다녀오겠습니다.”
괜스레 더 무서워져 들을 사람 없는 인사를 했다.
“휴...”
밖에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맞으니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뭐였을까.”
악몽은 살면서 수 없이 많이 꿔 보았다.
하지만 왜 이번 악몽은 이토록 기억에 남는 것인가.
알 수 없는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
부우우웅...!
생각을 깊게 하느라 하마터면 버스를 잘못 내릴뻔했다.
우우웅...
그래도 다행히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흡...! 후우... 하.”
신기하게도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머금으면 몸이 편해진다.
인터넷에서는 좋은 습관은 아니라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중독되어 버린걸.
“흣차!”
단숨에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서늘한 공기 음침한 분위기.
어제 지겹도록 느낀 그 느낌이 다시 한번 나를 반겨줬다.
“취이익! 취익!”
들고 온 가방도 장비도 보이지 않아서 얕보인 건지 고블린 무리가 초장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취에엑!”
고블린 한 마리가 단검을 손에 쥔 채 돌진해 왔다.
“어딜.”
퍽!
무언가를 세게 가격하는 둔탁한 소리가 던전에 울려 퍼졌다.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역시.”
지금의 근력 스탯은 18.
처음 고블린을 잡았을 때 비하면 두 배 올라간 수치이기에 더 이상 고블린 따위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취익! 공격! 공격해라!”
앞서 달려오던 놈이 당한 건 그저 우연이라 생각한 건지 남은 고블린 전체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인벤토리.”
쏴아악!
하늘에서 검은 구멍이 열리며 물이 세차게 쏟아졌다.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촤아악!
이번에는 진짜 파도가 고블린들을 덮쳤다.
“취엑! 취이익! 췩!”
놈들은 고통스러운지 아무 말이나 시끄럽게 내뱉었다.
[고블린 무리를 처치했습니다.]
[전리품 : 고블린 털가죽(X9)을 획득했습니다.]
“좋은데?”
어제 던전을 돌며 떠올린 생각.
‘인벤토리에 물을 넣으면 편하지 않을까?’
실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기에 바로 실행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인벤토리.”
스르륵...
게다가 사용한 물은 다시 담으면 그만이었기에 이론상 무한 동력에 가까웠다.
“취이익! 취익!”
자신들의 영역에서 날뛰어서인지 수많은 고블린이 현우를 마중 나왔다.
“이건... 너무 많잖아?”
어림잡아 50마리쯤은 돼 보였다.
띠링!
[퀘스트 : 고블린 부족에게서 생존. 제한 시간 : 1시간. 퀘스트 실패 시 페널티 : 사망.]
시스템도 이것들을 이기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처음으로 ‘생존’ 퀘스트를 내주었다.
[물의 권능이 발동됩니다.]
촤아악!
현우는 고블린들이 대처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게 스킬을 날렸다.
“먹혔나?”
“취이익! 췩!”
“쳇!”
겨우 이 정도로 50마리의 고블린을 뚫을 수는 없었다.
“이것도 견뎌 보시지.”
현우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블린들을 도발했다.
“인벤토리.”
왜 인지 인벤토리에서는 물 몇 방울만이 쏟아졌다.
“아...! 아까!”
왜 인지 인벤토리에서 물이 쏟아지지 않았다.
“아... 아까!”
습격당한 탓에 물을 조금밖에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 이제야 떠올랐다.
“취이익! 샤낭! 사냥!”
되려 고블린들만 자극한 꼴이 되어버렸다.
쉭! 픽! 피빅!
현우의 머리 바로 옆, 뒤, 앞 다양한 각도에서 날붙이가 날라왔다.
고블린들의 시력이 조금만 좋았어도 선 채로 죽을 뻔했다.
타다닥!
머리가 돌아가기도 전에 발이 먼저 움직였다.
자신이 이렇게 빨리 뛸 수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로 미친 듯이 뛰었다.
픽! 휙!
“어어!”
도망치는 와중에도 뒤에서는 날붙이가 끝없이 날라왔다.
“취에엑! 취익!”
“젠장!”
설상가상으로 앞에서도 고블린 무리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떡하면...!’
뒤에서는 날붙이가 날라오고 앞에서는 고블린 무리가 달려온다.
옆은 바위로 막혀있다.
그렇다면 정답은...
위다!
탓! 타닷!
현우는 벽에 튀어나온 돌들을 밟으며 위로 올라갔다.
쉭!
푹!
“윽!”
비록 올라가다가 팔에 칼이 꽂히긴 했으나 당장 죽음은 면할 수 있었다.
“취익! 췩!”
아래를 내려다보니 팔이 짧은 고블린들이 올라오다가 떨어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제한 시간 : 30분.]
어느새 시간은 30분이나 지나 있었고 고블린들의 낌새를 보니 남은 시간 동안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듯 보였다.
주르륵...
“으윽!”
팔의 상처 부위가 점점 뜨거워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하나... 둘... 셋... 흡! ...아악!”
현우가 이를 꽉 깨물며 박혀있는 칼을 빼냈다.
단검에 묻은 피를 보니 아주 깊게 박혀있었다.
“허어... 허어...”
다행히 독은 묻어있지 않았는지 상처 부위는 깨끗했다.
“인벤...토리.”
극심한 고통에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드륵... 드르륵...
소독수를 힘겹게 열어 상처 부위에 흘려보냈다.
“윽! 으!”
기절할 듯이 찌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찌이익!
붕대를 입과 한 팔을 사용해 힘겹게 감았다.
“후우... 후우...”
지혈이 잘 됐는지 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지만 대신 엄청난 졸음이 몰려왔다.
“제길... 수면독 이었나...”
풀썩!
“여기서... 잠들면...”
***
띠링!
“어!”
벌떡!
현우가 시스템에 알람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0,000 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름 : 백현우
레벨 : 12 (741/1650)
HP : 268/900
MP : 370/370
[요구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새로운 기능 : 상점이 추가 됐습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메시지가 떠 눈앞이 어지러웠다.
“상점?”
띠링!
[골드 상점이 열립니다.]
눈앞에 인터넷 쇼핑몰 같은 창이 연달아 떠올랐다.
“세계수의 나뭇가지... 불타는 심장... 얼어붙은 정령의 눈물...”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삐빅!
[보유 골드가 부족합니다. 현재 보유 골드 : 14000.]
무심코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터치했지만, 가격이 200만 골드씩이나 했다.
[사용자의 수준에 맞춰 상품 목록이 바뀝니다.]
“조잡한 나무검... 가죽 방어구... 낡은 밧줄...”
방금과는 차원이 다른 흔히 말하는 쓰레기 아이템들만 보였다.
“이건?”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최하급 체력 물약을 구매하시겠습니까? (가격 : 3,000 골드)]
“구매.”
[최하급 체력 물약을 구매했습니다.]
구매를 완료하자 손에 빨간색 액체가 담긴 작은 병이 들어왔다.
뻥!
“으음...”
코르크 마개를 열자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새가 올라왔다.
“꿀꺽.”
한 모금 마셔보니 냄새와는 다르게 살짝 달콤하면서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슈우우욱...
액체가 온몸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다.
이름 : 백현우
레벨 : 12 (741/1650)
HP : 863/900
MP : 370/370
‘체력이 600이나 찬다고?’
성능은 ‘최하급’이라는 이름과 달리 기대 이상이었다.
‘팔도 다 낳았잖아?’
체력이 차오르자, 팔에 자상도 자연스레 치유되었다.
“내려가 볼까.”
고블린 부족들은 포기하고 돌아간 듯 주변은 조용했다.
“취익...”
“아직 안간건가... 어?”
현우와 마주친 고블린은 무언가에 물린 듯 팔에 커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크르릉!”
“칫! 하필이면...”
[던전의 보스가 나타났습니다.]
띠링!
[퀘스트 : 언더 하운드 처치 (0/1). 퀘스트 실패시 페널티 : 사망.]
“크르릉! 크왁!”
하급 던전의 최악이자 최강의 포식자 언더 하운드가 이빨을 드러냈다.
“크릉... 크왁!”
“취에엑! 취에...엑!”
놈은 자신을 과시하듯 눈앞의 먹잇감을 게걸스럽고 잔인하게 찢어발겼다.
몸을 뒤덮고 있는 새 하얀 털에 범벅이 된 핏자국은 주변이 조용해진 이유를 말해주었다.
“크르릉...!”
더 이상 고블린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을 무렵 맹수의 이빨이 이번엔 현우에게 향했다.
놈의 커다란 덩치에 압도당해서인지 울음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렸다.
“크왁!”
“으읏...!”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자세를 취하는 맹수 앞에서 한낱 먹잇감은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크릉... 크와악!”
“으으!”
[물의 정신이 발동됩니다.]
“...어.”
한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눈앞의 적은 뭔지 방금까지 했던 생각은 뭐였는지 일순간 머리가 멈췄다.
허나 그 시간은 아주 짧은 찰나였다.
현우 본인조차 느끼지 못한 아주 짧은.
그러나 결코 부족하지 않은.
“후...”
공포라는 감정이 사라지자, 눈앞의 적은 조금 큰 늑대 정도로 인식되었다.
사실 조금 큰 늑대도 무섭기는 매한가지나 스킬 덕분인지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크왁!”
놈이 커다란 이빨을 드러내며 돌진해 왔다.
쾅!
“크윽...”
현우는 대체 무슨 배짱인지 달려오는 놈을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내려다 보기 좋게 날아갔다.
“크르릉!”
[※주의 : 잔여 체력이 10% 미만입니다.]
HP : 74/900
“젠장... 뭐 이리 빠르냐.”
[최하급 체력 물약을 소비했습니다.]
HP : 674/900
“크르륵! 크왁!”
“또냐!”
[물대포가 발동됩니다.]
현우의 손끝에서부터 거센 물기둥이 나아갔다.
“큭...”
그 반동이 너무 강해 자신이 먼저 날아갈 지경이었다.
“허억... 이 정도라면...”
“크르르륵!”
현우의 노력에 비해 놈은 처음부터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은 채 공격을 몸으로 막아냈다.
휘리리릭!
언더 하운드는 몸에 묻은 물을 털어내려 격하게 움직였다.
‘... 저건!’
놈이 몸을 터는 사이 전신을 덮고 있던 털 사이로 고블린의 날붙이에 당한 커다란 상처가 잠시 보였다.
휙!
현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쪽으로 물약을 마시고 남은 병을 던져보았다.
“크륵!”
휙!
물대포에도 꼼짝않던 녀석은 겨우 유리병 하나에 몸을 움직였다.
‘이거다!’
“크왁! 크릉!”
놈은 무언가 들켰다는 듯 방금보다 더 큰 소리로 포효했다.
“공포에 질린 개가 더 요란스럽게 짖는 법이지.”
“크으왁!”
언더 하운드가 현우의 도발을 알아들은 듯 커다란 입을 벌린 채 돌진해 왔다.
[물대포가 발동됩니다.]
쾅!
현우는 다시 한번 날아갔다.
“크윽... 아아악!”
충돌하기 직전 겨우 몸을 숙여 허리가 잘리진 않았지만 세게 부딪힌 바람에 갈비뼈가 부러졌다.
“크릉... 크릉... 크르륵!”
언더 하운드는 쓰러진 현우 앞에 와서 승자의 포효를 내질렀다.
“인벤토리!”
슈와와악!
순간 놈의 옆구리에서 인벤토리가 열리며 물대포가 쏟아졌다.
“잘 가라 똥개.”
“크와악! 크왁... 크륵.”
쿵...!
언더 하운드의 쓰러지는 소리가 던전에 울렸다.